점수를 세지 않게 된 날
30년 영업 실적표처럼 스코어카드를 붙들던 사람이 점수 대신 달력에 '나간 날'을 세기 시작했다. 공이 안 맞는 날에도 9홀은 돈다는 규칙이 생기기까지.

대구에 사는 예순한 살 독자가 들려준 이야기를 한 사람의 목소리로 재구성했습니다. 일부 세부는 각색했습니다.
실적표를 들고 구장에 갔다
서른 해를 제약 영업으로 살았다. 월말이면 지점 벽에 실적표가 붙었고, 내 이름 옆 숫자가 한 달의 나였다. 은퇴하고 파크골프를 시작했을 때, 나는 그 버릇을 구장까지 들고 갔다.
수첩에 날짜별로 타수를 적었다. 지난주보다 줄면 동그라미, 늘면 세모. 석 달쯤 지나자 세모가 그려진 날은 저녁밥 맛이 없었다. 같은 조 사람보다 한 타라도 많이 친 날은 집에 와서도 그 홀을 머릿속으로 다시 쳤다.
그러다 일이 났다. 공 하나가 OB 선 근처에 멈췄다.
"그거 나간 거 아입니까?"
"선 밟았으면 안이지요."
목소리가 점점 커졌다. 결국 내가 우겨서 안으로 쳤다. 그 홀은 이겼는데, 남은 홀 내내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.
"형님, 나는 숫자 안 적어요"
그 주말에 같은 구장에서 오래 친 분과 한 조가 됐다. 나보다 두 살 아래인데 구장에서는 십 년 선배였다. 마지막 홀을 마치고 내가 습관처럼 물었다.
"오늘 몇 개 쳤어요?"
"몰라요. 나는 숫자 안 적은 지 삼 년 됐어요."
그 대신 그는 집 달력에 구장에 나간 날마다 동그라미를 친다고 했다. 한 달에 동그라미가 몇 개인지가 자기 점수라고.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. 공 치러 와서 공을 안 세면 뭘 세나 싶었다.
동그라미에도 규칙이 생겼다
반신반의하며 따라 해 봤다. 냉장고 옆 달력에 연필로 동그라미를 쳤다. 그러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. 점수를 세던 때에는 공이 안 맞을 것 같은 날 아예 나가지 않았는데, 동그라미를 세기 시작하자 그런 날에도 나가고 싶어졌다. 동그라미 하나를 비워 두는 게 더 아까웠다.
그래서 규칙을 하나 정했다. 몸이 아픈 날이 아니면, 공이 안 맞는 날에도 9홀은 돈다. 비가 그친 지 얼마 안 된 아침, 어깨가 무겁고 기분까지 가라앉은 날에도 9홀만 돌고 왔다. 그런 날 점수는 형편없었지만,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나가기 전보다 나쁜 적은 없었다.
어깨에 힘이 빠져서인지 타수도 조금 줄었다. 정확히 몇 타인지는 모른다. 적지 않으니까.
지난달 동그라미는 열네 개였다. 스코어카드는 이제 같은 조 사람이 기록을 부탁할 때만 꺼낸다. 이번 달 달력에는 동그라미가 벌써 여섯 개 있고, 내일 날짜 칸에는 아내가 먼저 연필로 작은 점을 하나 찍어 두었다.
자주 묻는 질문
- 동네 라운드에서도 점수를 꼭 적어야 하나요? +
- 동네 구장에서 즐기는 라운드라면 적지 않아도 됩니다. 다만 대회나 동호회 기록전에서는 홀마다 타수를 적는 것이 기본입니다.
- 컨디션이 안 좋은 날엔 몇 홀만 치고 나와도 되나요? +
- 됩니다. 9홀 한 코스를 마치고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고, 중간에 그만둔다면 뒤 조의 진행을 막지 않도록 코스 밖으로 비켜 나오세요. 통증이 있는 날은 쉬는 편이 낫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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