같은 산을 백 번 오르는 이유
7년째 집 뒤 낮은 산만 오르는 대구의 한 독자. 그의 이야기를 산행 메모 형식으로 엮었습니다.

대구 동구에 사는 예순다섯 독자가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, 그가 적는다는 산행 메모 형식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. 날짜와 세부는 각색했습니다.
퇴직하던 해 봄부터 집 뒤 산을 오른다. 해발이 높지 않아 정상까지 사십 분, 한 바퀴 돌아 내려오면 한 시간 반이다. 사람들은 지겹지 않으냐고 묻는다. 대답 대신 수첩을 보여 준다. 산에서 내려와 현관 앞 계단에 앉아 한두 줄씩 적어 온 것이다.
3월 9일. 첫 산행. 정상까지 쉬지 않고 못 감. 약수터 벤치에서 두 번 앉음. 52분.
4월 21일. 진달래. 약수터 위 비탈이 온통 분홍. 지난달엔 저기가 그냥 갈색이었다.
7월 30일. 새벽 5시 반 출발. 해 뜨기 전이라 그늘이 필요 없었다. 여름엔 이 시간이 맞다.
같은 길을 매번 걷다 보니 적는 내용이 달라졌다. 처음엔 시간과 숨이 찼는지만 적었는데, 어느 순간부터 나무와 사람과 날씨를 적고 있었다.
10월 3일. 중턱 큰 소나무 아래 다람쥐. 늘 같은 자리에서 본다. 도토리 철이다.
이듬해 1월 14일. 북쪽 비탈 계단이 얼었다. 아이젠 없이 나섰다가 돌아옴. 낮은 산이라고 얕보지 말 것.
8월 26일. 태풍 뒤. 큰 소나무의 남쪽 가지가 부러져 길을 막고 있었다. 구청에 전화함.
9월 2일. 가지 치워져 있음. 잘린 자리가 하얗다. 한참 서 있다 내려옴.
수첩이 세 권째다. 넘겨 보면 같은 오르막에서 쉬는 자리가 약수터 벤치에서 그 위 바위로, 다시 정상 바로 아래로 올라갔다가, 몇 해 전 무릎이 불편하던 겨울에는 도로 약수터로 내려와 있다. 숫자로 적은 적은 없지만 내 몸의 사정이 그 자리들에 다 남아 있다. 먼 산에 가면 이런 비교를 할 수가 없다. 길이 매번 달라서다.
명산에 다녀온 친구들은 사진이 화려하다. 나는 그 사진이 부럽지 않다. 대신 친구들이 모르는 걸 안다. 우리 산 진달래는 남쪽 비탈부터 피고, 북쪽 계단은 2월 말까지 녹지 않고, 큰 소나무의 잘린 가지 자리에는 올봄 송진이 굳어 갈색이 됐다는 것.
어제 메모는 이렇다.
10월 31일. 47분. 소나무 아래 다람쥐 또 봄. 잘린 자리 옆으로 새 가지가 손가락만큼 나왔다.
자주 묻는 질문
- 같은 산을 자주 오를 때 기록은 어떻게 남기면 좋을까요? +
- 날짜, 걸린 시간, 쉰 자리, 그날 본 것 한 가지 정도면 충분합니다. 같은 길이라 기록을 비교하기 쉬워, 계절과 몸 상태의 변화가 잘 보입니다.
- 익숙한 동네 산에도 준비물을 다 챙겨야 하나요? +
- 물과 휴대폰, 겉옷은 늘 챙기세요. 낮은 산도 겨울에는 그늘진 비탈이 얼어 있을 수 있어 아이젠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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